조선일보에 씌여지곤 하는 부류의 글은 내 느낌상 기사보다는 약장수 대본과 더 비슷하다


정말이지 조선일보처럼 상냥하고 흥미로운 신문이 없다

박정희는 일제에 부역한 장교였다

해방 후 우리의 현재 주적인 북한과 내통한 스파이로도 활동했었다

사로잡힌 후에는 사형을 피하려고 동지들을 불었다

서울로 기갑부대와 해병대를 데리고 들어온 반역자이고, 사법부를 겁박해서 영문모르고 잡혀온 시민들을 죽이도록 했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위해 일본에 대한 굴욕적인 협약을 맺었고, 이름만 왕이 아닌 왕이 되고자 헌법에 손을 댔다

그의 딸은..........뭔가 우아하고 있어보이긴 하는데 모자라보이기도 한다

돌이켜 반추해보니 딸의 선임자는 과연 유능했다

나는 조선일보만 읽는 and/or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반응이 좋은 and/or 일베에서 노는 and/or 전라도와 김대중을 숨쉬듯 욕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과 의미를 모를리가 없다고 믿는다

자기 앞가림 똑바로들 하고 배울만큼 배우기도 한 사람들이다

그들도 당연히,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계속해서 조선일보를 고집하고, 박정희를 추억하고, 박근혜에 환호하고, 전라도를 모욕하고, 그중 일부 젊은 친구들은 한시를 참지 못하고 다시 일베에 로긴할까?

나는 그동안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 했었다

정치사회갤러리가 희한한 애새끼들에게 점령당했을 때에도, 박근혜가 승승장구하고 영감들이 "민주당 빨갱이놈들!" 이라며 스쳐갔을 때에도, 대선특집 방송에서 우리 어머니들이 붉은 모자와 목도리를 있는대로 걸치고 거리로 나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가 않았다

대통령 선거도 분명히 이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문재인의 당선이 실현된 가상의 12월 31일 쯤에도 나는 아마 이거랑 비슷한 글을 쓰고 있었을거라는 생각이다

나는 20일 낮이 되어서야 험한 얼굴로나마 겨우 그들과 마주서서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 터무니없는게 내 신경을 붙잡고 있어서 지난 세월동안 느끼지 못 했던 내 이웃인데, 빡친 그 모습을 보고 그동안 내가 많이 잘못한걸 알게 되었다


한명이 내게 묻는다

박정희가 뭘 해먹고 뭘 저질렀는지 나도 대충 다 아는데, 내가 그에게 뺏기거나 받은것도 없는 판에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옛날 사람을 굳이 나도 따라서 욕해야 하냐고, 그리고 욕함에 망설임이 있다는 이유로 왜 나까지 욕을 쳐먹어야 하는 것이냐고


밀양이나 대구나 경북이나 혹 경남이나 충남에서 아주 오래 산 분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그분을 네놈이 왜 모독하는 것이냐며 역정을 내었을 터이다

그 호감정이 공화당이 도모했던 분할 전략과 이전에는 없었던 지역대립 프로파간다에 의해 유도된 허구에 기반한 믿음이라는 건 내가 믿고있는 프로파간다적 허구

보다 많이 얻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던,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던 지역적 차별 혜택과 일감을 시종일관 바라며 살던 사람들도,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안된건 알겠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돈 벌고 먹고 살려는 것 뿐인데 왜 우리를 저주하고 조롱했던 것이냐며 설움을 토한다

XXX개새끼 해봐 놀이가 생겨난 이유와, 일베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표하는 행동이 다름아닌 민주화로 불리게 되었던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편으론 광주의 의거를 자랑스러워 하는 호남 사람들이 자기들 지역이 개발에서 소외되었음을 억울해하고 원망의 방향을 때때로 경상도와 그 사람들에게 돌리기는 하지만, 영남 사람들의 대응되는 행위의 일상성과 격렬함이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인 이유도 나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앙갚음을 하고 싶었던거다

호남과 광주는 빈말로나마 칭송이나 동정을 받지만, 다시 경북과 경남으로 나뉜다고도 하는 영남은 박정희가 등장한 이후의 어느 때부터인가 다른 지역들 모두의 적, 개새끼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분할지 상상도 못 하겠다

아니, 출신이나 지금 사는 곳이 영남이나 이른바 강남3구의 밖이더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가족친지 모두가 새누리당을 강하게 지지하는, 전라도를 악의적으로 묘사한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듣고 자란, 김대중이나 노무현의 경제정책에 크게 골탕을 먹은, 집이 좀 사는데 어딘가 불안불안한, 북한이 매우 밉고 두려워서 사고가 터졌을 때마다 기분이 매우 나빠지는, 아무 생각도 없이 살다 흥미거리를 찾아 일베에 접한, 돈을 내지도 않는데 끝없이 푸싱되는 조선일보를 그냥 읽기로 했었던, 어느날 변희재의 주장을 그럴싸하다 느껴봤던.. 등의 다양한 사례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들까지 모두를 포괄하는 공통점은 아마 한가지 뿐일 것이다

누가 보는 앞에서 명확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던 것

관심조차 없거나, 이해하기 힘들었거나, 혹시 잘못 말해서 지적당할까봐 겁이 났거나, 찜찜하지만 어느 쪽으로든 티를 내버리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손해를 입을까봐 입을 열지 않은 것이,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그리고, 각자간에 흥미가 없거나 서로를 혐오하던 그들이지만, 대답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싸잡아 한통속의 공범으로 몰렸고, 분노한 표정의 사람들에게 매도당하고 말았다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 중 조선일보가 사이비 구라인걸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없지만, 그런 그들을 조선일보만큼 포근하게 위로하고 어루만져준 이는 없었다

바로 그곳, 한국은, 좌파와 빨갱이와 종북과 진보와 개혁과 민주화와 전라도를 연관시켜 이해하는 것쯤은 이제 상식인 곳이다

별 의견이 없었고 말주변이 없었을 뿐 양심이나 자존심이나 이타심이나 지성같은 것까지 없지는 않았던 사람들에게 이제 대항할 구실과 태도가 주어지게 된다

이름조차 믿음직한 뉴라이트, 뜻은 와닿지 않으나 읽어보니 입에 찰지게 붙는 애국과 보수, 그리고 대통령 박정희.


아름다운 상찬은 혼자 다 듣던 지역은 사기꾼 깡패의 본거지로 둔갑하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던 세대는 어느새 나이가 들어 부패하거나 배가 부른 모습을 하나둘 들키게 되었다

좌파적 경제정책으로 소시민인 우리에게 이득이 조금 더 돌아올 수 있다거나 말거나, 그건 북한의 사상과 조금 가까우며 나라를 망하게 하는 사술이란다

햇볓정책 말은 참 이쁘지만, 북한은 결국 그 돈 그 쌀을 우리 땅에다 내쏠 무기로 바꿔버렸다

사회의 어디가 얼마나 더 좋아진다는 말인지 짐작도 안되고 생각 한번 해보기도 귀찮고 물가나 안올랐으면 좋겠다

이러한 불평을 되뇌던 끝에, 오물을 받아쓰며 영문모를 표정을 짓던 사람까지 얼굴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이제 한국인은 모두 화난 표정이다

우리가 한과 수치를 위로하기 위해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이승만이나 이병철 등에게 가하던 칼날처럼 표독한 말과 태도는, 이제
죽을 고비를 넘겼었거나 스스로 죽은, 자기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더 살기좋게 해주고 싶었던 사나이들에게 되돌려지고 있다

내가 기꺼이 믿었던 도리의 가치와 불의의 그릇됨은 반대로 전도된 채 가르쳐지고, 있었던 사실과 결과마저 왜곡되고 유포된다

내가 억울한건 떳떳하기 때문이지만, 저들은 떳떳하지 말기를 강요받았으므로 억울하다

그리고, 개표부정이 없었다는 전제 하에, 48%는 19일 밤에 단 한번 상처받고 고작 몇일간의 멘붕을 겪었을 뿐이지만, 51%는 18대 대선 투표일의 날이 밝기 전까지 아주 오래도록 아파왔었다

다시 한번 말 하는데, 그 기분이 어떨지 나는 짐작조차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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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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