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마음과 몸은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뻔하다고 느끼는 자에게는 뻔하고 가치없는 선언이 될 터이다

그러나, 스스로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음은 틀림없는 사람들 중 정말 그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음을 자각도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그럴 수는 없지만 의식하기로 산소의 존재감을 알며, 심지어는 대해서 정말 다행이고 기쁘고 은혜롭다는 기분으로 매 호흡을 감사히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

보통은 겪기 전에, 그러니까 제대로 엿을 먹거나 아니면 뭔가 잃어버려보기 전에는 절대 그 존재감을 눈치채어 비슷하거나 연관있는 다른 것으로부터 감히 파악코자 분리하려 할 수가 없다

아니면, 몇개안되는 조각을 마침내 뚝딱 맞추면 그걸 통해 진상의, 너만 모르고 쭈욱 그래왔던 충격성을 똑바로 바라볼 기회가 항상 곁에 있어왔음을 인식치 못 한다

사고로 다리를 잃어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이 온갖가지로 평소보다 절실하게 생각을 하는 그 심대한 상실의 기간을 거치고 나서 전자신경과 인공관절로 이루어진 기계다리를 이식받고 그걸로 스스로 움직이며 느낄 보다 짜릿하고 신나는 살아있음의 자각이, 결코 그런 계기나 단절을 겪지 못하고 시간표맞춰 먹고사는 루틴을 오가는 평범한 이들과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뭐가 어쨌든 마음과 몸은 하나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자

나누어 명명하고 분리하여 취급하는 학술자의 태도가 생긴 이유는, 그것이 정말진짜레알 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려깊은 대우와 위대한 아트는 이것을 보다 더 가까이, 일반적으로 마음을 현상계로 끄집어내어 더 뚜렷하게 삶과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요즘것들은 그러지 못한다

두번째. 진짜 앎은 말이나 글이나 기타 매체를 통하여 절대 전해주거나 배울 수 없다

다매체를 이용한 시청각교재를 쓴다 한들, 기억이야 물론 좀더 수월히 되겠지만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임해봐야, 머리가 좋아서 정말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해봤자, 기억에 불과하다

정말 중요하고, 중요하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정말 재밌는건 절대로 전해듣거나 학습해서는 알지 못하고, 겪어야만 깨닫는다

그 후에, 어쩌다 인과가 닿아 옛적 언젠가 먼저 그걸 알아챈 누군가가 남긴 글을 읽으면서, 거기에 같은것이 담겨있음을 눈치 챌 수 있을 뿐이지

그러니까 공부같은거 해봐야 아무것도 알 수 없고, 경험을 통해 얻은 무엇도 사실 기록중에 그와 같은것이 있나없나를 확인하고 미소짓는 데 말고는 쓸모가 없다

어쨌든 모르는놈은 죽어라 들이밀고 알려줘도 어차피 모르고 알게 될 놈은 알려줘도 소용이 없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알려주려 하기도 전에 자동으로 깨닫는다

정확히 말 하자면, 그냥 먹고살기 빡빡한 그런게 아니라 정말 좆돼봐야 그 대가로 뭘 얻는다

마르셀 프루스트, 오노레 발자크, 프란츠 슈베르트, 단테 알리기에리, 오스카 와일드 등등

대박쳐서 역사에 이름한줄 남긴 사람들같지?

아니다 그보다 더 밀접한 공통점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저 사람들의 유년기에 대해 한번 찾아보자

내외적인 환경과 성격이 얼마나 불우했고 얼마나 처참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비범하고 찌질하게 그것들에 대응을 했는지

내가 나열한 자들의 공통점은 찌질함이다

내면의 높은 깨달음이건 월계관을 헌상받음이 마땅한 엄청 아름다운 작품이건 다 좋은데, 저렇게 살기는, 나처럼 다들 싫을거야

다음,

세번째. 그래서 마음을 떨어울리게 하고 회자되곤도 하는 강렬한 페이소스의 노래나 시, 연극등이 있다

또한, 통속매체가 아울러 있다

니네 그거 왜하냐?

생각않고 고민도 못하는 애새끼들이 청승맞은 사랑노래를 흥얼대고, 삶이 번잡하고 빡빡은 한데 재미없어할 만큼의 정신은 남은 그보다 늙은 사람들은 또 연속극같은거 찾아본다

통속가요는 곧 닥쳐올(혹은 이미 하고있는) 연애의 파국에 대한 모범삽질을 제공해주고(아울러 그 방향으로 꼴아박게도 해준다), 드라마는 일과 후 가족구성원 각자의 존재의 일부나마를 인접하게 모아주는 기능성도 있다

그것만일까?

더있다

아주 해로운거다

소박하고 순조로울 나름의 삶을 못 살고 실존했거나 그것을 모사하여 지어냈거나 아무튼 상관없는, 그러니까 남의 삶에 관심을 왜 기울이냐고

그리고 종종 거기에 휩쓸려서 따라도 해보고,

지상의 비극은 모두 모아서 태워버려야 한다

우리 좋은것만 보고 살 수는 없는걸까?

본받으려면 기쁘고 간단한것만 해야지 왜 꼭 남의 삶의 골치아픈걸 들여다보고 같이 우느냔 말이다

거울뉴런은 그딴데 쓰라고 있는거 아니란말야

영화 이퀼리브리엄과 브이포벤데타에 등장하는 사건의 원흉과 그 매혹적인 페르소나를 지어난 각본가 염두 속의 입장, 그리고 역사 속 시황제는, 혹 나와 같은 발상을 한게 아니었을까?

이 세상의 본성은 어차피 놔둬도 복잡해지는 것이니 이미 있던 복잡하고 또한 없앨 수 있는걸 가능한 치워서 우리 삶을 이해하기 쉽고 속편한 상태로 약간 퇴행시키고자 하는 그런 시도 말이다

최소한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마음과 몸은 하나이며 그리고 동시에 각자만의 것인데, 어쩌면 그들이 돈벌려고 그런 독한것들을 뒷생각잊고 뿌려댄 덕(?)의 결과로 거기에 이렇게 무방비로 노출된 (나의)세상이 뒤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네번째. 상상력이 특출하던 룸펜 몇이 모여서 놀려고 짜맞춘 유사신화에서 정립된 여러 법칙 중, 거기의 데미우르고스(신 비슷한거)들은 자신에게 향하는 숭배와 사랑의 머릿수에 비례하는 권세를 획득한다는 구절이 있다

돈놓고 돈먹기나 땅따먹기처럼,

하지만 본래는 이 사회에서 명실공히 신화 또는 이른바 말씀이랍시고 신화보다도 정통으로 간주하는 것 보다 더 오랜 기원을 지닌 개념이고 D&D나 워해머나 와우는 그냥 문헌에서 베낀거

하여튼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그것과 비슷한 망령이 이 세상에 가득하다

비극으로 향하는 사랑에 관해 평민들도 이해하고 따라하기 쉽도록 정리한 클리셰의 망령, 그냥 연료끝나서 꺼진것일 뿐인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하는 오만가지를 뒤섞어 저은 망령, 환각과 착란으로 이거저거 합체시키고 이름붙인 환상의 동물들을 관장하는 망령, 마음과 몸의 밀접성이 동떨어져감에 따라 덩달아 둔감해지는 감각을 기어코 흔들고자 점점 강하고 격하고 괴해지는 표현과 집념과 소통의 망령, 이분법의 망령, 타인의 즐거움을 위해 뭔가를 분사하려 발악케하는 예능 망령, 소유욕과 브랜드가 대변하는 물신망령, 언제는 있었나 싶은 성스러움이라는 망령과, 명시적으로 그것의 일부만을 얻을것이지만 태도는 물불을 안가리는 신앙의 망령, 알고나니 가져오고 싶은 피안의 에센스에 대한 망령, 영업질의 망령, 소모에 대한 망령, 망령에 대한 망령, 영지주의의 망령, 스파게티괴물의 망령, 공정함과 정당성과 무결함과 질서를 추구하며 오지랍까지 도맡아 처리하는 망령, 무엇을 좋아하는 망령, 무한히 정연해지고자 하는 논리와 편성의 망령, 권력과 명예로 같이가자 끌어당기는 망령, 양자물리학의 망령, 태도와 해석과 규범과 관계와 속셈의 밀접한 다섯을 모두 부리는 망령, 현상유지라는 미명을 쓴 나태의 망령, 번뜩하는 직관의 망령, 가운데서 농간부리기만 하는 매체의 망령, 탐닉과 중독의 망령, 만족 또는 불만족의 망령, 신용의 망령, 갖다붙이는 망령, 위키피디아의 망령, 연상하는 망령, 엔트로피의 망령, 위상의 망령, 밈의 망령, 고백의 망령, 율동의 망령, 구원의 망령, 부재하는 망령, 자기혐오와 열등감의 망령, 감염과 낙태와 거세의 망령, 사리의 도착과 그로 말미암은 서글픔과 병주고 약주듯 그러나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보상의 망령, 진리와 자유와 영광이라는 좋은것만 다 챙긴 욕심덩어리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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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다를건 없지만 나같은 아니면 너같은 개체들이 특별히 쏠리어 욕망해주면 그들 각각의 경합하는 망령이 더 높은 지위를 얻어 보다 웅장하게 세상을 휘몰아 칠 수 있게 된다

아, 이 글의 결론은 없다

제목도 중간쯤 쓰다가 정환이형 생각나서 그냥 붙였어

그나저나 요즘 잠만 자고나면 이런게 막 떠오르는데, 왜 그런걸까?

불면증이나 가위눌리거나 꿈이 생생하게 기억나거나 헛것이 보이지는 않고, 일어나자마자 저렇다니깐

재밌지 않냐?

Posted by 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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