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내게는 향수병이 없다

멀리 오래 그리고 돌아오기 힘들게 떠나본적은 없지만, 그럴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나는 특별히 가보고싶은 어떤 곳이 없다

유명한 휴양지, 유서깊은 고도, 극한의 압도하는 조망, 모두 흥미없다

나의 애착이나 호기심이 영역과 지명에 별로 구애당하지 않는것일까

아니면, 세상에 관심이 없는 남자라서 그런걸지도

내 마음에 바로 속한것이 아니면 하찮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더라도, 나의 쪼잔한 의식에 닿아있다고 인정되지 않은 그것들은 나의 감동과 애착을 자아낼 수 없다

그러던 놈이 이제는 사람에게서 향수를 느낀다

Perfume의 향수라 하여도 틀리지 않고 좋아보인다

근처를 떠돌다 어떤 내 감관을 간지럽히는 은은함이 있으니 냄새면 어떻고 기억이면 어떠하랴




§ 2 - 팔리아먼트 피는 여자

이것은 매캐하리만치 달고 느끼한 담배다(돌틈에서 사는 토종벌의 독한 꿀맛처럼)

비명에 간, 나보다 제대로 후각쟁이 그루누이라면 분명 이 자취에서 고기안먹는 향긋한 백인소녀를 불에 굽는 모습을 연상 했으리라

엮이어 내가 사적으로 느끼는 흥미는, 다른 무엇보다도 선정적이라고 표현함이 걸맞을 종류이다

그 때, 첫글자 의 입모양을 취하고 후두의 빗장을 놓아 소리가 나오는 순간,

나의 공감각이 작동하여 선지의 비릿걸죽한, 침탈당한 붉음을 연상해낸다

이미 죽어버려 애석하고, 또한 생동감을 찾을 길이 없어 서글픈 심상이란다

조건반사라 해도 틀리지 않을만치 나에게 익숙한 절차이다

이것을 대변하는 색이 푸르기에 부자연도 하다

그러나뭐어때 그 여인의 나른하고 온순한 일상과, 유연하고 보드라울 쓸쓸함을 상상해본다

딱히 탁월은 않으리라 빤히 견적이 나오지만 어쨌든 나든 누구든 서로에게 종사할 즉시의 애틋함으로 엮일 사내라면 만족하기에 충분은 할 나신을 떠올리며 나는 응큼한 감흥에 젖는다

생각은 자유잖아




§ 3 - 생각은 찰나에 속한다

머릿속으로 말처럼 떠올리는, 그만 말로 빚어 입 밖으로 꺼내고 마는 것은 겉으로 삐져나와 세상과 맞닿은 이를 테면 의식의 표피각질에 불과하다

흔히들 안쪽까지 볼 수 있을 기회는 얻지 못한다

코끼리다리의 협소한 겉만 핥아서, 전체의 장엄함과 그 안에 이치를 닮은 움직임이 있음도 모른다

내가 무척 아끼는 책이 있다고 치자(실제로 몇권 있다)

좋아서 수십번을 읽고 되뇌다 어떻게 완전히 외우게 되었다고 한다(물론 그렇게는 못했다)

본적이 없는 사람은 밤을 꼬박 새야 겨우 일단 끝까지 읽어는 볼 수 있되, 어차피 중간중간 잊어버리기도 하고 행간의 이면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뜻을 단박에 알아챔도 기대키 힘들다(나라고 알까?)

(하여간에)

(생각)은 찰나에 속한다

나는 그 책의 모든 알맹이와, 받아들일 수 있는 내 양만큼의 작자의 의도, 그리고 내가 형성한 감상과 교훈과 이어서 나와 내 삶에 대한 적용 그리고 결과, 끝으로 그에게 그것을 전해들으며 즐거워하던 기억까지,

으흠~ 하는 한 순간에 모조리 떠올릴 수 있다

생각은 찰나에 속한다

당연히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이 자리에 앉아 내가 인식한 그만큼에 더하여 나머지 모든 것을 아우른다

(생각은 찰나에 속한다)




§ 4 - 떠올려 쓰려 했던 그 순간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한줄을 비움으로써, 그리고 이렇게 흰색으로써 표현할 수 있을까

제목처럼 가운데를 비운 괄호기호를 이용하여, 마치 흰 여백이 아닌곳이 바로 글자이고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음을 깨달은 지점이 곧 정상이었다라더며 넌지시하게 설명을 시도한다면, 가능할까

주상균님께서 생각은 모든 것을 넘어 전혀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다고 하셨지만, 안돼못가

머리가 떡져서 밖에 나가려면 씻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계속 방안에서 창 열몇개 열어놓고 빈둥대고 있잖아

잠도 아주왕창 퍼잤고 밥도 아까 먹은 것 같고 위장을 포만케 해주는 반죽의 위에 미지근하게 식은 홍차 한잔도 끼얹었겠다

자 이제 또 희망찬 하루인데, 기운이 빠져나간다

배우들이,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나 펀드 작살나고 기르던 개가 오토바이에 밟혀죽은 그날까지 아주 애써서 상상하며 감정을 잡아 눈물을 흘려야 하는 시대가 생각났다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어

부른 순간 그렇지 아니하게 되거나 흘러내리거나 휘발된다거나 함에 대해 간신히 전해들은, 그것을 닮고자 함일 터이지

참 지금은 구라로 생리식염수를 채워주더군

이 글도 구라지

노자도 그 옛날 설명을 실패했다

'아햏햏 >  혼잣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虎視牛步  (0) 2010.01.29
돌을던져 저 섬으로 가는 다리를 만든다  (0) 2010.01.16
불안의 알맹이  (0) 2010.01.13
Posted by 우다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