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왔다

오묘하고 어정쩡하고 좋더군

또 할얘기가 많이 생겨버렸다

이번엔 약간 쪼잔쪼잔하게 써볼래


일단 건물부터

안쪽의 본래 모습이 통 네모의 단일구조로 보이는데 파티션같은게 아니라 벽을 세워서 공간을 나눠버렸다

그래서 안그래도 길쪽에 나있는 입구가 좁아지는 틈처럼 생겨있는데 문열고 들어가면 한번 또 좁아지는 틈이 있다

그리고 그 틈의 끝에 엇맞춰서 채워놓은 프리즘이 천장까지 올라가는 그럴듯한 연출!(사진참조)

잘 들여다보니 손님들 못들어가는 저편에 엄청나게 많은 조명을 탑처럼 설치해놨는데, 거기서 나온 빛은 프리즘을 거쳐 우리한테 오면서 분광된 무지개빛깔과 그냥 여기저기로 뻗치는 샤방한 빛살로 바뀐다

그리고 양편의 다른 전시품이 있는 공간의 같은쪽을 희고 말랑말랑한(신기해서 만져봤음-_-)천 비슷한걸 팽팽하게 쳐놓아서 거길 통해 뽀얀 빛이 새들어온다

아마 작가가 세계를 돌며 계약했던 전시장중에 설치 마쳐놓은 후에 가장 뿌듯했던 장소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기운도 비슷하고 디테일의 아다리가 아주 잘 맞았다


다음에 시선을 돌려보니 손으로 꼽을 수 있는만큼의 전시품이 곳곳에 듬성듬성 서있고 그 주변을 휘돌아치는 빨대의 흐름이 눈에 띄는데, 이 작가가 세계최초로 지어낸 특유의 스타일인진 모르겠다만(그럴리가 없을듯?) 일단 빨대가 거무죽죽하게 때가 타서 감점이고 옛날에 인사동같은 동네의 좀 신경써서 돈칠한 전시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광경이라 그냥 그랬다

참고로 이거 따라다니다 보면 작가가 구석에 숨겨놓은 낙서비슷한걸 한갠가 두갠가 찾을 수 있을거야

아쉬웠던건, 스탭의 거의 전부와 참관객의 사실상 전부가 다 젊은 아가씨들이라서 내가 좋아하는 발랄한 분위기이긴 했는데 묘하게 또 엄숙해가지고 빨대의 파도를 훑으며 어정거리는 재미가 반감되더군

그래도 애써서 재롱둥이스럽게 1층 화장실의 입구를 지나 윗층으로 올라가는 품격높은 원형계단의 뒷편에 쌓아놓은 빨대더미가 어쩐지 허당스러운 자세인걸 발견하고는 눈을 빛내며 그 뒤에 뭘 또 숨겨놨나 하고 봤는데 거긴 뭐 없어서 소년처럼 실망!

하여간 들고나온 전시품은 잘 생각해보니까 (하나빼고) 다 의자였는데, 웨하스나 프렌치파이같은 구조로 쌓아만든 종이를 편 후에 엉덩이로 완성한 의자, 무슨 섬유인지 뭔지를 잘 뽑아내서 동그란 통에 담아 쪄내만든 의자, 꼬불꼬불한 뭔가를 의자모양의 틀로 찍어서 용액에 담궈놓고 거기 녹아있는게 석출되는 작용으로 수정질을 덧씌운 의자, 아크릴인지 뭔지를 통으로 쭉 뽑아낸 벤치, 통유리에 구멍뚫고 길죽한 프리즘을 꽂아세운 의자...가 있었다

이것들도 벌써 해외뉴스 단신이나 국내외의 고뇌에 찬 따라지들이 먼저 나한테 스포일링한 덕에 아쉽게도 충격적인 경험이 못됐다


그건그렇고 전시된 그것들이 정말 의자일까?

의자로만 보인다면 넌 훼이크에 속은거다

잘 생각해봐ㅋㅋㅋㅋ


이어서 머천다이즈쪽에 들어가보니까 작업중에 집중하려고 그린 개념도(의 고화질 프린트본)도 있고, 갖고오진 않으셨지만 요샌 알루미늄판 쪼물락대는거에 꽂히셨다는걸 알리는 영상물도 봤다(그것들까지 들고왔으면 전시의 일관성이 떨어졌을거다. 걔넨 반짝거리지 않잖아)


다음에 사람들

이런말해서 미안하지만 1급수였다(오예)

비례좋고 늘씬한 바디에 동대문냄새 안나는 각양각색의 의상을 차려입은(더불어 손에는 모두 아이폰!) 베이비들이 가득해서 대한민국 본격된장전시씬의 훈훈한 미래를 느꼈다


씨발 근데 다좋은데 왜 사진들을 그렇게 쳐찍니?

더도아닌 여가와 덜도아닌 패션까지밖에 상상할 수 없는 그네들의 한계를 감안한다면 말야

표사면서 한컷, 건물앞에서 다시 한컷, 들어가서 표 찢는것도 한컷, 전시품마다 전부 옆에서 자세잡고 또 한방씩 교대로 담고 이런건 이해가 충분이 된다고

이른바 문화생활의 개념으로 간만에 시간내갖고 신기하고 예쁜것들 눈으로 구경하면서 남자얘기 적금얘기 연예인얘기 이런걸로 재잘거리는거 나쁘지 않아요

근데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데세랄 찌질이들이 자꾸 눈에 거슬린다?

그렇게 산업스파이처럼 화면안보고 셔터누르는데 급급한 아이들이, 마침내 몸과 몸으로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게 된 실존하는 역사물에서 과연 아우라를 느낄수가 있을까?

집에 가져가서 컴퓨터에 raw파일 풀어놓긴 할거란말야

근데 그 수백개의 파일들을 싹 불러들여서 일괄 후처리랑 포맷변환이랑 하고나서, 어디 올리려고 잘나온거 골라내기는 할테지만 주의깊게 보기나 할까?

사진이나마 집중해서 볼만한 그릇이었다면 애당초 실물을 그렇게 열심히 이모저모 뜯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뻔히 못할거 짐작하고 한심해하면서 이렇게 궁금한 척을 하고있단 말이야 나는


빨대부터 보자

이 작가가 하고있는 활동 자체가 이미 메인스트림 한가운데 테제의 반열에 올라버리긴 했지만, 아직도 어떤 전복적인 자세가 그 근본에는 생생하게 살아있거든

거무튀튀하게 먼지묻은 그 빨대들이 얼마나 많은 나라의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바닥에 뒹굴었을까?

그리고 작가가 빨대로 표현하려는 것에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실체랄지 어떤 모양이 없어(다른 종이와 유리질과 알루미늄과 결정용액은 물론이고 심지어 빛마저도! 전부 무정형의 형이다)

한건 끝나면 해체(라기보다는 주워담기)해서 포대에 담아 화물칸에 쟁여뒀다가, 다음번에 전시할 해당 공간에 맞게 그때그때 새로이 작가가 구상한 방향과 줄기로 다시 배치되는 조형요소일 뿐이란 얘기지

어떤 뭐랄까 표현과 그것이 소통되는 절차에 대해서 도식을 짜보자면 아래와 같거든?

[작가(의 자아)]  [작가의 의도(와 이념)]  [그것을 담아 표현해줄 매체물질]  [매체물을 빚고 다듬음으로써 한정시킨 형상]  [감상자의 감각]  [감상자의 해석(방식)]  [감상자(의 자아)]

내가 최근들어 즐겨 입에 담는 포스트모던이란게 등장하기 전에는, 이 작용의 순서가 아주 확고하게 짜여져있고 정확히는 이것들의 개념을 구분하고자 하질 않아서, 더 엄밀히 말하자면 분해가 가능한줄을 몰라서 밝혀지지 않았었다

옛날에는 안뜯고 한덩어리로 그냥 취급했었다 이거지

당시에 대충 아무거에나 그랬듯이 아마 신이 어쩌고라는 갖다붙이기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좌우간 그러다가 새시대가 바라는 천재같은 망나니들이 나타나서 다 뒤집어엎다가 우연히 발견하고는, 낄낄거리면서 이거에 해체를 가하거나, 시비걸거나, 장난치거나, 뒤바꾸거나, 아예 하나 이상의 어떤 단계를 빼버리거나, 강조점을 옮기는 등의 강간의 과정을 통하면서 이정도나마 명확하게 구분이 된것이지

써놓고나서 보니까 어린 과학도들의 망가뜨리면서 탐구하는 그런거랑 비슷하네?

하여튼간 기본적으로 이 관점에 이분법스러운 사고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어차피 모델이란게 너무 미묘하거나 너무 복잡하거나 너무 미약한 변수들을 털어내서 쉽고 빠르게 원리를 학습하려고 이용하는거니까 그렇다 치자고.

그리고 이 작가의 경우에는, 요즘 유행타서 먹어주는 인물들이 다 그렇듯이 3단계의 매체물질과 4단계의 형상을 다룸에 있어 기존의, 고전Classic작법의 그것과 크게 차이나는 태도를 취하고 있거덩(참고로 뜬 양반들은 이제 너무 확 튀어나가면 망하기 때문에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전에 미처 못했었던 혹은 하던것처럼 3단계랑 4단계 말고 다른부분을 비트는 짓을 이제 못하고 있다. 예술 똑바로 할라면 결혼은 포기하자)

내가 보기엔 일반적으로 3단계가 띄고있었던 중대성의 대부분을 2단계로 이양시키고, 4단계에서 드러나는 현상과 통념의 한계를 가능한 깨거나 넓히는 것으로써 5단계에다 보다 폭넓은, 심지어 작가의도에서 벗어난 영역에까지 닿을 상상력을 부여해주고자 하는 그런 추세같기도...

그런 맥락에서, 나는 다 앉아보고 만지작주물럭하고 내가 직접 빛도 비추고 빛의 반대쪽에서 들여다보고 그런 말하자면 인터랙티브를 하고싶었는데 주최측이 취한 진열의 태도가 보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종류의 멍청한 상태라서 좀 아까웠다


자 다시 빨대

위 도식에다 적용하는거야

그러니까 3단계에다 빨대를 놓았는데, 작가는 빨대라는 개념 내지는 개념을 자아내는 물건자체에 주목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머리가 거의 전부다 닫힌채여서 빨대는 빨아먹는데만 쓰는건줄 아는 민간상식집단에게 그렇지도 않다는 파격과 환기를 일으킬 수 있는 맥락, 길죽하고 약간 말랑해서 잘 안부서지고 엮어다가 모양을 만들어내기 좋은 물성, 어떻게든 어디 가서라도 동원하기 편하도록 저렴한 가격등의 요인만을 잡아서 이용한거겠지

이 시점에서 빨대Straw라는 시니피에가 퇴장한다고 달리 말하면 또한 정확할테지

그게 그러니까 2단계 작가의 의도라구

또 다음에 4단계는 그 빨대라는 물건들로 만들어낸, 어떤 흘러가고 휘돌아치고 뭉쳤다가 흐트러지는 동세겠지?(토어쩌고 이름이 있었는데 그런데 신경쓰지마! 신경쓰면 지는거다!)

물론 이것이 그 때의 전시공간 내부와도 효과적으로 조응할 수 있어야 함은 당연하겠고, 또한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서의 개같은 5단계에 눌리어 발휘되지 못했지만 놀러온 사람들의 호기심을 비롯한것들을 아주 콱콱콱 자극적으로 쑤셔박아 긁어야 된다

장신구와 화장으로 도드라진 매력이 전적으로 천하고 허무한 것이지만 그래도 사랑할 누군가를 찾아내는데에 요긴할수도 있듯, 감상자가 그때에 그걸로나마 번쩍하고 깨어나며 모습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그런데 포스트모던이라서 의도가 그게 아닐수도 있다지. 하지만 포스트모던이라서 그런데도 그럴수가 있는거야. 문제는 포스트모던이라서 그랬는데도 안그런게 상관없다는 것이지. 안그래요 요시오카센세?),

바로 그 한가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대한 직관적이어야 하고 끝없이 야하게 해야된다


아 시바 중간중간 다시읽다가 내가 헷갈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여기서 빨대 끝


그릉까 내가 뭘 알리고 싶은거냐면 이 작가의 활동이 물성, 물질, 매체, 고정하는 관념, 형태등이 우리 지구인의 삶과 의식에서 점하는 자리에 어택을 가해서 다시보게 만들고(작가소개 읽어봐 거기에도 그렇대), 그러고 나서는 별수없이 다시 새로운 물성과 물질과 매체와 고정관념과 형태를 거느리는, 새로운 합성Synthesis의 패러다임이 확립되는것에 착취당하는 역할이거든?(작가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근데 혼자서도 떠올릴 수 있는거긴 하지만 굳이 보러왔으니 생생한 실물과 마주하면서 더 화끈하게 그의 상상능력과 창의적인 관점의 이동과 그것을 실제로 이뤄내버리는 강력한 추진력따위를 느끼고 닮아보려는 마음의 노력은 하지도 않고 엉뚱하게 사진기와 영상파일이라는 굳어있는 매체에다가 잠깐 멈춰선 단면Aspect만을 담아가려고 하니까 내가 갑갑하다 이거였어

막말로 돈많이버는 스타예술가 되는게 사진만 찍어서 가능한 일이었으면 셔터질을 그렇게 열심히 한 니가 벌써 뉴욕에 빌딩한채 사서 상설전시관 꾸며놓고 작가님소리 듣고있지

안그러냐?


휴 글쓰는게 쉬운게 아니군

어라? 근데 다른거 언급할 필요없겠다 빨대만 갖고 할말 다했네


Posted by 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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